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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짧은 이야기

[WaW Talk] 복에 대해서


'복'에 대해서

 

 

 

사도행전 9장에서는 주께서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바울)을 부르시는 유명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고난’을 받아야 한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복을 받아야 하는데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면 이것이 ‘복’일 수 있을까요?

 

창세기 12장은 우상을 만들던 아브라함을 불러서 ‘복’을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신다고 까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12:2). 진짜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살다가 이삭 만을 낳고 막벨라 굴에 묻힙니다. 그럼 아브라함의 ‘복’은 무엇인가요?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도 하게’(막 3:14)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좌우에 앉아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을 원했습니다(막 10:35-45). 동상이몽(同床異夢). 한 솥밥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달랐습니다.

 

 

이렇듯 부르심과 복은 같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이 일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장은 신참 지도자 여호수아가 세워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 이것이 가장 큰 위로이자 용기였습니다. 지혜와 힘을 다 가지신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분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요 15:7).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복은 그 분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난이 두렵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구요,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믿음 조상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히 11장)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재물, 명예, 좋은 것)을 얻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물론 얻으면 좋고 많을수록 좋겠죠. 세상에서 잘 나가면서 하나님 이름을 들먹이며 간증하는 것도 좋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것을 구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주와 구원자 옆에 서있으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를 만나야만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CHAPLAIN-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