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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독서, 서평

서평 <일상영웅>성도, 길을 잃다

 

 

 

서평 <일상영웅>성도, 길을 잃다

(팀 체스터 저, 백지윤 역, IVP)

 

우상현 목사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현 세기 들어 우리 사회를 더욱 빠르고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통일성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각자 다양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에서 두드러진다. 여기에 교회의 고민이 있다. 사실 한국 교회는 이런 신시대에 적응한다는 명분으로 과도할 정도로 다양한 방법론을 수입하거나 개발해 왔다. 이에 사역자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발견하고자 애써 시도해 왔으며, 그 결과 교회 속에서 더 이상 통일된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다양한 전공, 다양한 강조점, 다양한 프로그램, 다양한 전문화 등 수많은 형식과 방법들이 난무하며 교회를 향하여 시위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사역자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고 자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의 사역자가 방법론과 형식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성경의 진리를 삶의 현장과 괴리시키는 이원론이라는 뼈아픈 열매만 남게 되었다.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십자가와 부활같은 성경의 핵심적 내용을 내세를 위한 도그마로만 인식하여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아무런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패배주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마디로 숲 속에서 지도를 손에 쥐고도 길을 잃은 형국이다. 팀 체스터(Tim Chester)는 『일상영웅』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특별한 삶을 창조하는 특별한 사건”이라고 하면서 성도의 평범한 순종의 삶 속에 사실 영웅의 면모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십자가와 부활
저자는 존 스토트(John Stott)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차세대 복음주의 저술가요, 운동가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이미 『교회다움』, 『일상교회』(이상 IVP)등과 같이 선교적 교회론에 관한 설득력 있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복음을 소유한 “공동체”의 정체성에 큰 관심을 두고 “교회의 일상성” 혹은 “일상의 제자도” 등과 같은 주제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본서도 “일상성”이라는 저자의 지속적인 관심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중요한 특색을 지닌다. 여타 저서에서 일반적으로 “공
동체”라는 접근 방식으로 일상성을 설명하려 했다면, 본서에서는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십자가와 부활 신학이라는 렌즈로 일상의 제자도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삶과 가르침이 점점 크게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교회에 커다란 의미와 도전을 안긴다.


본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십자가와 삶’(1~2부), ‘십자가와 부활의 연관성’(3부), ‘부활과 삶’(4~5부)이 그것이다. 1부와 2부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순종한 십자가가 성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세밀히 파헤친다. 저자가 초반에 십자가신학을 설명하면서 밝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에 비추거나 감성적인 느낌에 근거해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즉, 직장에서 진급이 되거나 자녀들이 명문대학에 합격하거나 사업이 잘되어 큰돈을 벌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또한 열정적이고 감성적인 교회 음악 속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이 두 가지 모두 성도의 삶에 유익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저자는 여기에서 멈춰서면 우리의 믿음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십자가는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위대한 선언”이라고 말한다(p.23). 십자가 사건이야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가 된다. 또한 한국 교회가 말하는 ‘제자도’의 본질이다. 저자는 십자가에 근거한 사랑의 확신이 이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라 지적한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자신이 되고 자신을 표현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당위’가” 되는 시대 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촉구한다(p.110). 그 길은 헌신과 희생이지만 궁극적으로 기쁨의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비교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개인의 경험이나 종교-윤리적 신념과 감성적 느낌에 근거하여 과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한국의 기독교는 독특하다. 마치 정서적 갈증 해소를 목적으로 삼는 듯한 흥분된 분위기의 일부 부흥회가 오랫동안 시장을 지배해 왔다. ‘은혜 받았다’, ‘기도응답을 받았다’라는 말은 다분히 감상적인 만족을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매우 비성경적인 개념이 파괴적인 율법주의와 만나 성도들에게 죄책감과 혼란을 가중시켜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에 열심을 내더라도, 교회가 개인의 만족과 복을 받기 위한 바람으로 이루어진 무속적 동기로 부터 과연 자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무언가 비이성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십자가의 사랑에 연합할 때에만 올바른 제자의 길로 인도 받을 것이라 경고한다.

 

체스터는 곧바로 부활로 넘어가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 연결고리를 걸어 둔다. 바로 제자도의 중요한 법칙, ‘고난 뒤의 영광’이다. 저자는 이를 다양하게 설명한다. 바디매오는 처음에는 ‘길가에’ 있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 ‘길을 따라 나섰다.’(p.133) 십자가는 속박이었으나 부활은 자유를 선언하여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p.139). 저자는 십자가-부활이라는 방식을 “역사라는 지렛대의 방향을 바꾸는 중심점”으로 강조한다(p.141). 이 길이 하나님 나라의 패턴이며, 제자도의 본질적인 지표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은 장차 올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유지될 수 있다. “고난 뒤에는 영광이 따른다.”(p.162)


저자는 세 번째로 성도의 삶에서 일하는 부활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 부활은 미래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현재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도는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것인데, 그 힘은 오늘 우리의 고난을 능히 인내하게 하는 실체다. 마르다가 오해하였듯 부활은 먼 미래에 우리의 육신을 다시 살게 하는 모호한 능력이 아니다. 부활은 현재를 사는 성도에게 자유와 생명을 가져오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천국 또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도가 오늘 발을 딛고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영원한 천국의 연장선상임을 강조한다. 그는 현실에 임한 부활의 능력이 성도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세속적 사고방식이 양산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나도록 도전받는다. 부활의 능력이 성도를 물질에 대한 태도, 사람에 대한 섬김, 지배적인 세계관 등에서 영원을 위한 모습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삶은 만족스러워야 한다’, ‘성취도가 높은 직업을 얻어야 한다’ 등의 개념은 삶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성경적 의미의 삶이란 장차 계수할 자의 심정과 부활의 능력으로 펼치는 섬김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에라야 세상적 성취를 추구하는데서 벗어나 저자가 표현하듯 “소망으로 가득한 모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신학과 삶의 오묘한 조화
『일상영웅』이 가지는 장점은 성도의 삶에 관한 균형감있는 조언을 준다는 점이다. 최근 기독교는
교리와 실천 사이에서 양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성경의 교리를 강조하며
실천과 경험을 애써 무시한다. 성경에 헌신하는 과한 태도가 때로 ‘근본주의자’라는 조롱으로 되돌
아오기도 한다. 그나마 과거 신앙의 선배들은 양보 없는 보수주의의 면모에도, 그들의 삶으로 그 가르침에 꽤나 무게감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근간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삶의 열매를
맺는 듯 보인다. 몇몇 유명 인사들의 입에 담긴 힘든 추문은 성경의 핵심적 가르침을 비그리스도인
들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드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경험과 실천을 성경의 가르침과 떼어 놓고, 실천의 주체를 우리 자신의 의로움으로 삼
고 있다. 성경이 인용되더라도, 그 사건과 인물을 롤모델로 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윤리적 실천’이라는 정답을 얻기 위하여 성경 전체의 구속적 맥락을 오해하거나 의도적으로 관심 밖에 두는 경우도 있다. 뿌리가 건강하지 않은 나무는 결국 시간이 지나도 열매를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본서가 유익한 가장 큰 이유는 성도가 걸어야 할 올바른 삶의 기초를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신학적 기초
에 두기 때문이다. 책의 초반부를 꽤 중요한 신학적 논점과 성도의 삶을 연결시키는데 할애한다. 성경의 내용에 집착하는 맹목적인 근본주의도 아니며, 은근히 인간의 의로움을 앞세우는 신율법주의도 아니다. 한 마디로 저자는 신학과 삶의 오묘한 조화를 말하고 싶어 한다. 본서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신학적 기초를 이룬 삶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게다가 성도의 삶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이해하여 신학적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패턴”이란 표현으로 신학의 균형을 잡는다. 십자가 신학만 과도하게 강조되면 분리주의적 경건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반면 부활 신학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지나친 승리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쉽게도 교회 역사 속에서 이런 불균형이 실재했고, 그 결과로 교회에 큰 아픔을 안기기도 했다. 책 속에 그러한 분열과 아픔의 역사를 진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반에 걸쳐 균형 잡힌 신학과 삶에 대한강조가 두드러진다.


본서는 신학 전반을 진술하는 교리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도의 경건을 위한 제자도의 교과서도 아니다. 사실 교리와 삶을 연결시켜 균형을 잡으려 집중하면서, 본서의 흐름 속에서 언급되었으면 유익했을 주제가 생략된 듯한 느낌이 든다. 제자도에 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이나 십자가 및 부활 교리와 기독교 세계관의 연관성 등이 그것이다. 좀 더 조밀하게 구성했다면, 동일한 볼륨 안에서 가능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본서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치밀하게 주제를 파헤쳐 나간다.


저자는 책의 끝에서 두 명의 일상영웅을 소개한다.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정원사 샘은 평범한 능력
과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낮은 계급의 ‘일반인’이었으나 위대한 여정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일반인이 간직해 왔던 영웅의 진면모를 멋지게 드러내었다. 또 한 영웅은 저자의 어머니이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이었으나 목회자의 아내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평생을 사랑의 실천을 보이며 살아내신 분으로 소개한다. 거기에는 십자가와 같은 고난도 있었으며, 찬란한 부활의 빛도 있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이며, 인식해야 할 정체성 일 것이다. 유명해지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이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차곡차곡 채워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 일상이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견고한 기둥으로 세워질 때, 우리의 삶은 주님 앞에서 영웅처럼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우상현

삼일교회에서 교육 담당 목사로 섬기며, 삼일교회 기독교세계관 아카데미(SWA)의 시작과 함께 1년 동안 기초를 다지는 사역을 감당했다. 충남대학교 수학과(B.S.),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London Theological Seminary(설교자 과정),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하였다.

 

출처 http://www.worldview.or.kr/library/article/2224

 

@ Chaplain-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