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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일상 이야기

학력 차별없는 매출 1500억 회사…"대표도 투표로 선정"

학력 차별없는 매출 1500억 회사…"대표도 투표로 선정"

[모인이 주목하는 대학&기업]①여행박사

 

 

편집자주 | 모두다인재는 '진로-진학-취업의 연계'를 지향합니다. 대학은 학생을 뽑을 때 수능 점수 못지않게 소질과 적성을 살펴봐야 하고, 기업도 사원을 뽑을 때 스펙 못지않게 진로성숙도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선도적으로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대학과 기업을 발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점수나 스펙이 아닌, 적성과 재능이 중시되는 사회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픈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고졸 출신 직원이 몇 명이나 되나요?"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일견 당황스러운 인사담당자의 답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적절한 답변이었다. 애초에 고졸, 대졸 구분 없이 채용을 하다 보니 고졸 출신 직원 집계가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2000년 8월, 자본금 250만원으로 시작한 여행박사는 10년 사이 총매출이 6배 이상 성장해 2014년 기준 총매출 15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이 됐다. 창립 초창기부터 여행박사는 학력·나이·성별 차별 없이 직원을 구성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갈구하던 초창기 3명의 멤버들이 단지 '일본 여행을 하고 싶어서' 만든 회사였다.

여행박사를 창립한 신창연 창업주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상경해 뒤늦게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경원대 관광호텔경영학과를 전공했다.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관광인프라에 반해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사에 취직한 그는 직접 여행사를 차리기에 이른다.

현재 신창연 창업주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황주영 대표가 그 자리를 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과정이 '투표'로 결정됐다는 점. 팀장이나 회사의 대표자리까지 직원들이 1년에 한 번, 투표를 통해 선정한다. 2013년 80% 찬성 기준의 재신임 투표에서 79.2% 찬성표를 획득, 신창연 창업주는 홀홀 자리를 털고 황 신임 대표에게 경영을 맡겼다.


여행박사 서울본사 직원들 /사진제공=여행박사
학력·성별 기입란 없는 이력서

여행박사의 입사지원서에는 학력, 성별 기입란이 없다. 고정화된 틀이나 다름없는 대학교·대학원·학점·성별 기입란도 없이 단출하기만 하다. 대신 영업직의 경우 경력부문 기술사항, 자기소개서, 여행경험, 여행기획 아이템 등을 상세히 적도록 구성돼 있다. 지원자의 뒷배경이 아닌 현재의 '스킬'과 '경험', 그리고 '열정'를 보겠다는 여행박사의 의지다.

고졸과 대졸 사이의 연봉 차이도 없다. 고졸에게 채용문을 열어두는 기업들도 대부분의 경우 대졸자와 고졸자의 초봉에 차이를 두는 편이지만 여행박사의 경우, 오직 능력만이 연봉의 기준이 된다. 여행박사 전 대표이자 현 서울영업본부 영업2팀 주성진 팀장도 고교 졸업후 바로 여행박사에 합류했다.

팀에 필요한 인재는 팀이 직접 뽑는다

채용절차도 간략하다. △서류전형 △면접 오직 두 가지 절차만 치르면 채용이 결정된다. 어차피 며칠에 거쳐 면접을 실행해도 인물에 대해 전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 

서류전형의 일반정보 부문이 간략한 대신 경력 및 아이템 기획 부문이 충실하기에 서류를 검토하는 시간이 길다. 형식적인 서류검토가 아닌, 실제 실무자에게 필요한 인재(파트너)를 찾기 위해 인력이 필요한 팀에서 직접 서류를 검토한다.

입사지원서를 해당 팀장에게 보내고 팀원들이 함께 검토한 후 서류전형을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면접 역시 임원진이나 인사팀이 아닌, 팀 내에서 직접 보고 채용한다.

여행박사 인사팀 고창현 팀장은 "능력 중심으로 뽑았을 때, 채용된 직원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먼저 검증을 하고 뽑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최대한 업무 권한을 직원들에게 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부산지사에서 동남아 지역을 담당할 직원을 뽑은 적이 있었다. 3개 국어에 능통한 스펙이 '짱짱한' 사람이 지원했으나 회사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행지역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이를 가장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스펙은 부족해도 해당 지역을 좋아하고, 블로그나 SNS를 통해 잘 표현해 낸 이가 입사 기회를 얻었다.

능력 중심으로 채용하기 때문에 '경력직원'의 경우도 두 번의 엄격한 평가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통과하면 정직원이 되지만 평가 점수 80점을 넘기지 못하면 탈락하거나 1~2개월의 수습기간을 연장해 재평가 받는다. 회사가 새로운 직원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신규직원들 역시 회사에 대해 '인생을 함께 할 만한 파트너로서' 평가를 내리는 기간이 된다.

여행박사에 이력서 학력 기입란 외에 또 없는 것이 있다. 비정규직 채용이다. 본인 희망 계약직을 제외하고는 전 직원이 정규직 채용으로 들어온다. 심지어 서울 본사 청결을 담당하는 미화원들 역시 직접 정규직으로 채용해 운영하고 있다.

'흡연자'는 뽑지 않는 것도 눈에 띈다. 10대 때부터 담배를 피우던 신창연 창업주도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담배를 끊었다. 전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 사안이었다. 여직원 200명, 남직원 80명에 이를 정도로 비흡연자들이 많았고,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시행에 들어갔다. 흡연자가 지원할 경우, 강력한 금연의지가 있어야 하고 장기간에 걸친 철저한 금연테스트를 통과해야 수습딱지를 벗을 수 있다.

여행만 좋아하면 OK? 착각도 유분수

그렇다고 지원자가 여행만 좋아하면 채용되는 것은 아니다. 고 팀장은 "신규 입사자들이 여행전문회사라 해서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행 업무는 실제 업무의 일부분"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오히려 신규 입사자들은 전화통만 붙잡고 고객을 접대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고등학교 채용 프로그램 '스카우트'를 계기로 여행박사에 들어온 김영빈 씨 /사진제공=여행박사
2013년 KBS 특성화 고등학교 채용프로그램 '스카우트'를 계기로 여행박사에 입사한 김영빈 씨(19)는 홍콩 느와르 영화를 테마로 해서 홍콩 여행 프로그램 아이템 기획력을 인정받아 들어온 케이스다.

김 씨는 "처음 입사했을 때는 실망도 많이 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여행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콜센터 같은 업무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고백하며 "수습 딱지를 떼고 나서야 실제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업무를 맡게 돼 실제 여행사 업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입사지원자들의 환상을 깨는 것이 기업 입사 실패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고 팀장은 "입사 지원하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는 의미가 없다"며 "직장에 들어오면 잘하는 종목에 죽을 듯이 덤비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신규 직원들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채용 시스템에서 회사 입장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입사지원자 입장에서도 회사를 바라봐야 하지요. 그래서 면접을 할 때도 회사에 대한 환상을 깨주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본인이 실제로 하게 되는 업무를 말해주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템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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