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에서...>/일상 이야기

'전쟁' 보다 '전쟁광'이 더 무섭다

'전쟁' 보다 '전쟁광'이 더 무섭

[기자의 눈]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 

한두 달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돌리다, 백발 할아버지의 인터뷰가 눈에 밟혀서 채널을 고정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 전쟁 당시 이른바 '고지전'의 생존자였다. 휴전 협상이 난항을 겪는 사이에 동부 전선의 고지를 차지하고자 뺏고 빼앗기는 전투 중에 동료를 거의 전부 잃은 노인은 인터뷰 가운데 말문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인터뷰를 보고 나서야 그 노인이 회고했던 그 전투가 바로 장훈 감독의 영화 <고지전>(2011년)의 무대라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는 몇 시간 뒤면 전쟁이 멈출 줄 알면서도 고지를 점령하고자 맹목적인 전투에 나서는 이들의 모습을 처참하게 그린다. 그렇게 그들은 죽고 또 죽고, 살아남은 이들은 수십 년이 지난 후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새삼 <고지전>의 비극을 떠올렸던 것은 남북 대치 상황이 한창이던 주말에 인터넷 게시판을 뒤덮던 전쟁을 선동하는 호전적인 구호를 접하면서다. "전쟁 불사"를 외치는 일부 보수 언론의 외침은 "이참에 본 때를 보여주자" "당장 총 들고 나가자"는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 20대 누리꾼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그렇게 이참에 "한판 붙어 보자"고 외치는 이들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껏해야 군대에서 총 몇 번 쏴 본 게 다일 것이다. 그 중에는 조준 사격 솜씨가 남달라 칭찬을 받았을 수도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온갖 전투 게임에서 출중한 실력을 발휘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진짜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모시던 부사관은 진짜 군인이었다. 그는 사실 바로 3년 전에 진짜 전투를 한 적이 있었다. 1996년 강릉 지역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때 토벌 작전에 차출되어서 전투에 나섰던 것이다. 그 작전 때 군인 12명, 예비군 1명, 경찰 1명이 죽었는데, 그는 동료가 총탄에 맞아서 죽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 

사격이라면 사격, 주특기라면 주특기 못하는 게 없었던 그 부사관은 당시를 이렇게 한 마디로 회고했다.

"무서웠어!" 

조준 사격은커녕 연발로 해놓고 머리 위로 총구만 내놓고 쐈단다. 머리가 하얘져 어쩌면 그런 총알에 아군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무섭다"는 생각 뒤에는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죽으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라고! 어느 여름날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삽질을 하다 쉬는 시간에 들은 그 작은 전쟁 얘기는 그렇게 서늘할 수 없었다. 

전쟁을 위한 기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등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이 20세기 초 미국의 대표적인 반전 운동가였다는 사실은 낯설다. 그의 짧은 글인 <전쟁을 위한 기도>(존 그로스 그림, 박웅희 옮김, 돌베개 펴냄)는 그의 반전 운동가로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가 이 작은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가해자(게임 플레이어)가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에서 전쟁을 보라는 것! 

"…오, 우리 주 하느님이시여! 우리를 도우시어 우리의 포탄으로 저들의 병사들을 갈기갈기 찢어 피 흘리게 하소서. …저들의 청명한 벌판을 저들 애국자들의 창백한 주검으로 뒤덮게 하소서. …저들의 부상병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내지르는 비명 속에 잠기게 하소서. …저들의 누추한 집들을 잿더미로 화하게 하소서. …저들의 죄 없는 과부들이 비통에 빠져 가슴 쥐어뜯게 하소서. 

저들이 집을 잃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흙바람 이는 황폐한 땅을 의지가지없이 떠돌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친 채 굶주림과 갈증 속에서 여름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겨울에는 살을 에는 한풍에 노리개가 되어 영혼은 찢기고 노고에 지친 몸으로 헤매게 하소서. 주님께 안식할 무덤을 간구하더라도 거절하시고, 주님을 경모하는 우리를 위하여 저들의 소망을 산산이 날려버리시고, 저들의 생명을 시들게 하시고, 저들의 비참한 순례가 끝나지 않게 하시고, 저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시고, 저들의 눈물로 저들의 길을 젖게 하시고, 저들의 상처투성이 발에서 흐르는 피로 흰 눈을 얼룩지게 하소서. 우리는 그것을 바라나이다.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께.…" 

지금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총 들고 나가자"고 댓글을 다는 이들은 이 기도의 '저들'이 북쪽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총알받이가 될 이들은 비무장지대(DMZ)를 앞두고 북과 대치하고 있는 당신의 자식, 동생, 조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바로 당신과 당신의 가족 또 나와 내 가족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에서 총탄이 수만 발이 오가도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도네시아의 한 누리꾼(@SONE_kpopers1)이 지난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제발 싸우지 마세요(Please don't fight)"를 쓰고, '한국을 위해 기도한다(#PrayForKorea)'는 내용의 '해시태그'를 달아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전쟁이 나면 모든 것이 끝장 날 게 뻔한 한반도에는 왜 이리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전쟁광'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듯이, 전쟁을 금기(taboo)로 만들지 않는다면 인류에게 미래가 없다. 좀 더 절박하게 다시 말한다면, 전쟁을 금기로 만들지 않는다면 한반도에 미래는 없다.

 

[원제:김정은보다 전쟁광이 더 무섭다.]